1.황국신민화 정책 : 조선을 일본으로 동화시키려는 시도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 제국은 조선을 단순히 식민지로 지배하는것을 넘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는 황국신민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습니다. 이 정책은 한국인의 민족 정체성을 뿌리째 뽑아내고, 일본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주입하기 위한 정신적,문화적 동화 정책이었습니다. 황국식민화 정책은 학교 교육,일상생활,종교,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조선인들에게 강요되었습니다. 조선인을 일본의 충성스러운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조선인에게 황국신민 서사 암송을 강요했습니다 내용으로는 "우리들은 황국신민으로서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하며 인고단련하여 신민이 될 것을 맹세한다" 이는 일본 천황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학생과 공무원뿐 아니라 일반 민중에게도 강요되었습니다. 또한 궁성요배는 일본 천황이 거주하는 황국을 향해 절을 하는 의식으로, 황국신민화 정책의 또 다른 상징적 강요였습니다.학생과 교사들은 매일 수업시작전 황국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절을했으며 이는 천황 숭배를 내면화 하도록하는 강요된 행위였습니다. 학교에선 조선의 역사는 가르쳐지지 않았고, 대신 일본 제국의 발전과 천황 숭배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입되었습니다. 모든 수업은 일본어로 진행되었으며, 조선어 교육은 점차 축소되다가 완전히 금지되었습니다. 일본어로 된 교과서에서는 일본을 세계 중심으로 묘사하며, 일본 황실을 신성시하는 내용을 담았고, 조선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거나 경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공공기관과 학교에서는 일본 국기인 일장기를 게양하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부르게했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과 자부심을 철저히 억압했고, 민족적 자긍심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2. 언어와 문화 말살 :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우다
일제는 한국어를 민족 정체성의 핵심으로 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을 통해 조선어 교육은 점차 축소되었으며, 1941년 제4차 조선교육령에서 한국어 교육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수업이 일본어로 진행되었으며, 조선어 시간은 선택 과목으로 변경 뒤 결국 사라졌습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모국어를 배우고 사용할 권리를 박탈하며, 일본어를 유일한 학습 언어로 강제한 조치였습니다. 조선어 교사들도 일본어로 수업을 해야 했고, 이를 어길 경우 교사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공기관과 사회 전반에서 일본어 사용을 의무하 했고 공문서 작성과 행정업무는 모두 일본어로 이루어졌으며, 조선어 사용은 금기시 되었습니다. 또한 조선어로 된 신문과 잡지는 철저히 검열되거나 폐간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일본어로 전환되었으며, 1940년대에 이르러 강제로 폐간되었습니다. 조선어로 된 책 출판도 금지되거나 제한되었으며 민족 정체성을 고취하거나 한국 전통 문화를 담은 출판물은 발간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관습 또한 억압했습니다. 한국의 전통 문화는 민족정체성을 보존하고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억압하고 일본문화를 강제로 이식하려 했습니다. 명절과 관습은 일본식으로 변형되거나 금지되었고, 전통 의복과 전통 예술 또한 금지되어 일본문화 활동을 강요했습니다. 경복궁과 같은 주요 역사 유적지는 일본에 의해 훼손되거나 왜곡된 상태로 보존되었습니다. 수많은 고서,도자기,그림과 같은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며, 중요한 유산이 파괴되거나 손실되었습니다.
3.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 강요된 동화와 저항의 역사
일제강점기 후반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일본 제국에 동화시키기 위해 강압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특히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조선의 정체성을 제거하고 일본인으로 전환시키려는 상징적인 시도였습니다.창씨개명은 1939년 일본이 조선에서 시행한 강제적인 이름 변경 정책으로 조선인들에게 일본식 성씨와 이름을 사용하도록 강요한 제도입니다. 창씨개명은 1939년 2월 11일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건국 기념일에 공포된 조선 민사령 개정을 통해 공식화되었습니다. 6개월 이내에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해야 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자발적 선택적 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거부하거나 따르지 않은 사람들은 공공서비스를 받을수 없었고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신사참배는 일본의 신도 전통에 따라 일본 천황을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이는 일본 제국의 국민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일본식으로 동화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 전역에 신사를 세우고, 모든 공무원과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신사에 가서 참배해야 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강제되었으며, 교사와 학생들은 매일 아침 천황을 찬양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러한 신사참배는 종교적 자유를 철저히 억압했고 특기 기독교와 천도교를 믿는 조선인들에게 신앙적 양심에 반하는 행위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유로 투옥되고 고문당하며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인해 조선인들이 정신적 적,정체성적 고통을 겪었지만 그속에서도 민족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광복이후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한국인의 자부심과 정체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